칠원 윤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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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칠원 윤씨는 신라 태종 무열왕 때 태자태사를 지낸 윤시영을 시조로 하는 성씨이다. 고려 시대에는 윤거부를 1세조로 하여 군부판서 윤수를 배출했고, 윤수의 후손 윤환이 칠원부원군에 봉해졌다. 조선 시대에는 윤저, 윤석보, 윤탁연 등 주요 인물을 배출했으며, 문과 급제자 27명, 무과 급제자 22명을 기록했다. 칠원 윤씨는 충효공파, 대언공파, 칠성공파 등 여러 분파로 나뉘며, 각 파는 다시 세분화되어 여러 지역에 집성촌을 형성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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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원 윤씨 - [성씨/가문]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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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성씨 | 칠원 윤씨 (漆原尹氏) |
관향 | 경상남도 함안군 칠원읍 |
시조 | 윤시영(尹始榮) |
중시조 | 윤거부(尹鉅富) |
집성촌 | 충청남도 청양군 |
년도 | 2015년 |
인구 | 65,098명 |
비고 | 칠원 윤씨 대종회 |
인물 |
2. 역사
칠원 윤씨는 신라 태종 무열왕 때 태자태사를 지낸 윤시영을 시조로 한다. 윤시영의 아들 윤황은 판태사국사를 역임하였다. 그러나 그 이후의 세계(世系)는 실전(失傳)되어 고려시대 칠원현 호장(戶長) 윤거부(尹鉅富)를 1세조로 한다. 윤거부의 16세손 윤수(尹秀)는 군부판서(軍簿判書)와 응양군(鷹揚軍) 상호군(上護軍)을 역임하였다.[1] 윤수의 아들 윤길손은 응양군 상호군, 윤길보(尹吉甫)는 응양군 대호군(大護軍)을 역임하였고,[2] 윤길보의 아들 윤환(尹桓)은 칠원부원군(漆原府院君)에 봉해졌다.
2. 1. 시조 및 기원
칠원 윤씨(漆原尹氏) 시조(始祖) '''윤시영'''(尹始榮)은 신라 태종무열왕 때 태자태사(太子太師)를 지냈다고 한다. 《경신보(庚申譜)》 상계편(上系篇)에는 시조의 탄생설화가 나와 있는데, 칠원현(漆原縣)에 사는 윤씨(尹氏) 부인이 꿈에 신인(神人)으로부터 아이를 낳거든 이름을 시영(始榮)이라 하라는 말을 듣고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또한 《경신보》의 세록편(世錄遍)에는 윤시영이 칠원백(漆原伯) 혹은 호장랑(戶長郞)을 지냈다고 하며, 7대에 걸쳐 봉군(封君)되었다고 적혀 있다. 윤시영의 아들 윤황(尹璜)은 판태사국사(判太史局事)를 지냈는데, 이후의 세계(世系)가 실전(失傳)되어 고려에서 칠원현의 호장(戶長)을 지낸 '''윤거부'''(尹鉅富)를 1세조로 한다.윤거부의 16세손 윤수(尹秀)가 군부판서(軍簿判書)·응양군(鷹揚軍) 상호군(上護軍)을 역임하였다.[1] 윤수의 아들 윤길손은 응양군 상호군(上護軍), 윤길보(尹吉甫)는 응양군 대호군(大護軍)을 역임하였고,[2] 윤길보의 아들인 윤환(尹桓)이 칠원부원군(漆原府院君)으로 봉해졌다.
2. 2. 고려 시대
칠원 윤씨(漆原尹氏) 시조(始祖) '''윤시영'''(尹始榮)은 신라 태종 무열왕 때 태자태사(太子太師)를 지냈다고 한다. 《경신보(庚申譜)》 상계편(上系篇)에는 시조의 탄생설화가 나와 있는데, 칠원현(漆原縣)에 사는 윤씨(尹氏) 부인이 꿈에 신인(神人)으로부터 아이를 낳거든 이름을 시영(始榮)이라 하라는 말을 듣고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경신보》 세록편(世錄遍)에는 윤시영이 칠원백(漆原伯) 혹은 호장랑(戶長郞)을 지냈다고 하며, 7대에 걸쳐 봉군(封君)되었다고 적혀 있다. 윤시영의 아들 윤황(尹璜)은 판태사국사(判太史局事)를 지냈는데, 이후의 세계(世系)가 실전(失傳)되어 고려에서 칠원현의 호장(戶長)을 지낸 '''윤거부'''(尹鉅富)를 1세조로 한다.윤거부의 16세손 윤수(尹秀)는 군부판서(軍簿判書)·응양군(鷹揚軍) 상호군(上護軍)을 역임하였다.[1] 윤수의 아들 윤길손은 응양군 상호군(上護軍), 윤길보(尹吉甫)는 응양군 대호군(大護軍)을 역임하였고,[2] 윤길보의 아들 윤환(尹桓)이 칠원부원군(漆原府院君)으로 봉해졌다.
2. 3. 조선 시대
윤거부의 16세손 윤수(尹秀)는 군부판서(軍簿判書)·응양군(鷹揚軍) 상호군(上護軍)을 역임하였다.[1] 윤수의 아들 윤길손은 응양군 상호군(上護軍), 윤길보(尹吉甫)는 응양군 대호군(大護軍)을 역임하였고,[2] 윤길보의 아들 윤환(尹桓)은 칠원부원군(漆原府院君)으로 봉해졌다.3. 본관
칠원(漆原)은 경상남도 함안군 칠원면 일대의 지명이다. 본래 백제의 칠토현(漆吐縣)이었다. 757년(신라 경덕왕 16) 칠제(漆隄)로 고쳐서 의안군(義安郡 : 창원)에 예속시켰다. 고려 초에 칠원(漆原)으로 고쳐 1018년(현종 9) 김해에 속하게 하였다. 조선 초기에 칠원현으로 고친 후, 선조 때 창원에 속하였다가 광해군 때 현(縣)이 되었다. 1896년 경상남도 칠원군이 되었으나, 1914년 함안군에 폐합되어 칠원면, 칠서면, 칠북면의 3면으로 편성되었다.
4. 분파
칠원 윤씨는 여러 파로 분파되어 전국 각지에 집성촌을 이루며 번성하였다. 주요 분파는 다음과 같다.[1]
- 충효공파(忠孝公派): 18세손 윤환을 파조로 하며, 판결사공파, 생원공파, 낭장공파로 분파되었다.
- 대언공파(代言公派): 18세손 윤자를 파조로 하며, 양성당공파와 순수공파로 분파되었다.
- 칠성공파(漆城公派): 18세손 윤장을 파조로 하며, 군호는 칠성부원군이다. 서울에 소수가 거주한다.
- 사윤공파(司尹公派): 18세손 윤화를 파조로 하며, 좌사윤 벼슬을 지냈다. 부안에 소수가 집성촌을 이룬다.
- 부원군파(府院君派): 18세손 윤공을 파조로 하며, 칠성부원군에 봉해졌다. 보성에 집성촌을 이룬다.
- 장군공파(將軍公派): 17세손 윤계유를 파조로 하며, 대장군 벼슬을 지냈다. 보은에 소수가 집성촌을 이룬다.
1980년에 발행된 경신보는 5권 3,500페이지였으나, 2001년에 발행된 경진대동보는 11권 10,000페이지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이다. 이는 칠원 윤씨 문중에서도 충효공파와 대언공파의 후손이 크게 번성했기 때문이다.[1]
4. 1. 충효공파(忠孝公派)
충효공 할아버지는 18세조이며 휘는 윤환이다. 슬하에 자녀가 없어 둘째 동생인 칠성부원군의 둘째 아들 천효를 양자로 들여 3명의 손자를 두었는데, 큰 손자는 판결사공파(윤조생), 둘째 손자는 생원공파(윤신생), 셋째 손자는 낭장공파(윤광우)로 분파되었다.[1](1) 판결사공파판결사공은 20세조이며 휘는 조생이다. 통정대부 장례원판결사를 지냈고, 묘소는 상장리 막곡 명덕봉 산기슭에 있다. 조선 초기에 경상도 칠원에서 “정양 갈성”(지금의 정산면 백곡리)으로 처음 이주하여 후손들이 많이 번성하였다. 5남을 두었는데 다음과 같이 분파되었다.[1]
- 사직공계(윤연): 후사가 없다.[1]
- 충순위공계(윤적): 하동파라고도 불리며, 경남 하동에 집성촌이 있다. 후손은 소수이다.[1]
- 집현전교리지제교계(윤형): 막곡파라고도 하며 상장리에 집성촌이 있다. 후손은 소수이다.[1]
- 군수공계(윤신노): 지곡파라고도 하며 공주시, 청양군, 고령, 화성 등에 집성촌이 있고, 평택, 수원, 김포, 여주에도 소수가 거주한다.[1]
- 사직공계(윤신충): 무손과 번손을 낳았고 무손은 후사가 없고, 번손은 청안현감을 지내고 기와 지 두 아들을 두었다. 기는 사형과 사영을, 지는 사보를 낳았으며, 사형의 후손은 강원도 춘천, 홍천(춘천파)에, 사영의 후손은 인양, 아산(해대파)에, 사보의 후손은 목면 화양리(오산파)에 집성촌을 이루고 있다.[1]
(2) 생원공파생원공은 20세조이며 휘는 신생으로 세종 원년에 사마시에 합격하였다. 탄천 덕지리 종안서당골로 이주한 후 두 아들을 두었는데, 장남 윤제는 충청파로 탄천에 살았고, 차남 윤달은 진사공파로 거제도로 이주하여 거제파종중의 파조가 되었다. 생원공파는 충청파와 거제파(진사공파)로 나뉜다.[1]
- 충청파(생원공파) 분파:[1]
- 맹산공파: 논산에 집성촌이 있고, 공주, 부여에 일부 거주한다.[1]
- 승사랑공파: 부여에 집성촌이 있고, 공주, 논산에 일부 거주한다.[1]
- 전적공파: 장평, 청남, 목면에 집성촌이 있고, 부여에 일부 거주한다.[1]
- 동지사공파: 부여에 소수만이 거주한다.[1]
- 진사공파: 익산에 집성촌이 있다.[1]
- 거제파(진사공파)는 거제시 연초면 다공리, 동부면 명진리, 거제시 아주동에 집성촌이 있으며, 마을 이름을 따서 다공계, 명진계, 아주계로 구분한다.[1]
(3) 낭장공파낭장공은 20세조이며 휘는 광우이다. 대제학공의 3남으로 충북 음성과 경기 양평에 집성촌이 있고, 여주에도 소수가 거주한다.[1]
1960년에 발행된 경자대보 범례에 따르면, 낭장공파는 처음에 족보에 기록되지 않았다가 영조 때 신유보에 별보로 편입된 후 족보에 기록되었다. 이는 낭장공파의 전승이 대제학공계의 판결사공, 생원공과 다르다고 보았기 때문이다.[1]
4. 2. 대언공파(代言公派)
휘는 자이(18세조)이다. 대언공의 후손은 큰 아들 양성당공파(윤지)와 작은 아들 순수공파(윤사)로 나뉜다.(1) 양성당공파(윤지)휘는 지(21세조)이고, 집현전 학사로서 호는 양성당이다. 함안, 마산, 창원, 의령, 합천, 나주, 고성 등에 거주하고 있으며, 파계는 아래와 같다.
- 생원공파: 큰집
- 군수공파: 둘째집
- 대제학공파: 셋째집
(2) 순수공파(윤사)휘는 사(21세조)이고 호는 순수이다.
풍덕, 당진, 서울, 진천, 충주, 거제, 평택, 양산, 남원, 합천, 장단, 파주, 칠원, 유산, 대전, 칠곡, 제천, 화성, 평택 등에 집성촌을 이루고 있다. 파계는 아래와 같다.
- 생원공파
- 판관공파
- 집의공파
- 송월암공파
4. 3. 기타 분파
- 충효공파(忠孝公派): 18세손 윤환(尹桓)을 파조로 한다. 자녀가 없어 동생 칠성부원군의 둘째 아들 천효를 양자로 들여 세 손자를 두었는데, 이들이 각각 판결사공파(윤조생), 생원공파(윤신생), 낭장공파(윤광우)로 분파되었다.
- 판결사공파(判決事公派): 20세손 윤조생(尹稠生)을 파조로 한다. 통정대부 장례원판결사를 지냈으며, 묘소는 상장리 막곡 명덕봉 산기슭에 있다. 조선 초 경상도 칠원에서 정양 갈성(현 정산면 백곡리)으로 이주하여 후손들이 번성하였다. 5남을 두어 아래와 같이 분파되었다.
- 사직공계(司直公系, 윤연(尹淵)): 후사가 없다.
- 충순위공계(忠順衛公系, 윤적(尹)): 하동파라고도 하며, 경남 하동에 집성촌을 이루고 있으나 후손은 적다.
- 집현전교리지제교계(集賢殿校理知製敎系, 윤형(尹)): 막곡파라고도 하며 상장리에 집성촌을 이루고 있으나 후손은 적다.
- 군수공계(郡守公系, 윤신노(尹莘老)): 지곡파라고도 하며 공주, 청양, 고령, 화성 등에 집성촌을 이루고 평택, 수원, 김포, 여주에도 소수가 거주한다.
- 사직공계(司直公系, 윤신충(尹新忠)): 윤신충은 무손과 번손을 낳았고, 무손은 후사가 없으며, 번손은 청안현감을 지내고 기와 지 두 아들을 두었다. 기는 사형과 사영을, 지는 사보를 낳았는데, 사형의 후손은 춘천, 홍천(춘천파)에, 사영의 후손은 인양, 아산(해대파)에, 사보의 후손은 목면 화양리(오산파)에 집성촌을 이루고 있다.
- 생원공파(生員公派): 20세손 윤신생(尹新生)을 파조로 한다. 세종 원년에 사마시에 합격하여 생원이 되었다. 탄천 덕지리 종안서당골로 이주하여 두 아들을 두었는데, 장남 윤제는 충청파로 탄천에 살고, 차남 윤달은 진사공파로 거제도로 이주하여 거제파종중의 파조가 되었다.
- 충청파(생원공파) 분파:
- 맹산공파(孟山公派): 논산에 집성촌을 이루며 공주, 부여에 일부 거주한다.
- 승사랑공파(承仕郞公派): 부여에 집성촌을 이루며 공주, 논산에 일부 거주한다.
- 전적공파(典籍公派): 장평, 청남, 목면에 집성촌을 이루며 부여에 일부 거주한다.
- 동지사공파(同知事公派): 부여에 소수만이 거주한다.
- 진사공파(進士公派): 익산에 집성촌을 이루고 있다.
- 거제파(진사공파): 거제시 연초면 다공리, 동부면 명진리, 거제시 아주동에 집성촌을 이루고 있으며, 마을 이름을 따서 다공계, 명진계, 아주계로 구분한다.
- 낭장공파(郞將公派): 20세손 윤광우(尹匡佑)를 파조로 한다. 대제학공의 3남으로 충북 음성과 경기 양평에 집성촌을 이루고 여주에도 소수가 거주한다. 1960년에 발행된 경자대보 범례에 따르면, 낭장공파는 처음에 족보 기록이 없었다가 영조 때 신유보에 별보로 편입되었고, 그 후에 족보에 수록되었다. 이는 낭장공파의 전해지는 말들이 대제학공계의 판결사공, 생원공과 다르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 대언공파(代言公派): 18세손 윤자(尹孜)를 파조로 한다. 후손은 크게 양성당공파(윤지)와 순수공파(윤사)로 나뉜다.
- 양성당공파(養性堂公派, 윤지(尹)): 21세손 윤지(尹墀)를 파조로 한다. 집현전 학사였으며 호는 양성당이다. 함안, 마산, 창원, 의령, 합천, 나주, 고성 등에 거주하며, 아래와 같이 분파되었다.
- 생원공파(生員公派): 큰집
- 군수공파(郡守公派): 둘째집
- 대제학공파(大提學公派): 셋째집
- 순수공파(純粹公派, 윤사(尹)): 21세손 윤사(尹墀)를 파조로 한다. 호는 순수이다. 풍덕, 당진, 서울, 진천, 충주, 거제, 평택, 양산, 남원, 합천, 장단, 파주, 칠원, 유산, 대전, 칠곡, 제천, 화성 등에 집성촌을 이루고 있다. 아래와 같이 분파되었다.
- 생원공파(生員公派)
- 판관공파(判官公派)
- 집의공파(執義公派)
- 송월암공파(松月庵公派)
- 칠성공파(漆城公派): 18세손 윤장(尹)을 파조로 한다. 군호가 칠성부원군이다. 서울에만 소수가 거주하며, 보첩에는 칠성군파로 표시하고 있다.
- 사윤공파(司尹公派): 18세손 윤화(尹和)를 파조로 한다. 벼슬은 좌사윤이다. 부안에 소수가 집성촌을 이루고 있으며, 보첩에는 사윤공파로 표시하고 있다.
- 부원군파(府院君派): 18세손 윤공(尹)을 파조로 한다. 칠성부원군에 봉해졌다. 보성에 집성촌을 이루면서 고흥, 순천 등지에 소수가 거주하고 있다.
- 장군공파(將軍公派): 17세손 윤계유(尹季由)를 파조로 한다. 벼슬은 대장군에 올랐다. 보은에 소수가 집성촌을 이루고 있다.
1980년 발행된 경신보는 5권 3,500페이지였으나, 2001년 발행된 경진대동보는 11권 10,000페이지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이다. 이는 윤문 중에서도 충효공파와 대언공파의 후손이 크게 번성했기 때문이다.
5. 주요 인물
칠원 윤씨의 주요 인물로는 윤수, 윤저, 윤석보, 윤풍형, 윤탁연, 윤지술, 윤상현 등이 있다.
5. 1. 역사 인물
- 윤수 : 고려 충렬왕 때 군부판서, 응양군상호군을 지냈다.
- 윤저 : 윤수의 증손이다. 조선 태조 때 상장군이 되고 제2차 왕자의 난 때 태종을 도와 좌명공신 3등에 책록, 찬성사가 되었다.
- 윤석보 : 직제학을 지내고 청백리에 녹선되었다.
- 윤풍형 : 윤석보의 아들이다. 관찰사, 부제학을 역임하였다.
- 윤탁연 : 윤석보의 증손이다. 명종 때 춘추관기사관으로 '명종실록' 편찬에 참여하고, 옥당, 3도관찰사, 형조, 호조판서를 지냈으며, 선조 때 종계변무의 공으로 칠계군에 봉해졌다.
- 윤지술 : 숙종 때 유생으로 신임사화에서 화를 입었으며, 임창, 이의연과 함께 3포의로 일컬어졌다.
- 윤상현 : 전두환 대통령의 전 사위이다. 제18·19·20·21·22대 국회의원을 역임하였다.
6. 과거 급제자
7. 항렬자
31세 | 32세 | 33세 | 34세 | 35세 | 36세 | 37세 | 38세 | 39세 | 40세 | 41세 | 42세 | 43세 | 44세 | 45세 | 46세 | 47세 | 48세 | 49세 | 50세 | 51세 | 52세 | 53세 | 54세 | 55세 | 56세 | 57세 | 58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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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桓) 경(敬) | ○국(國) | 재(載) | ○의(義) ○의(誼) | 영(永) | ○학(學) ○근(根) | 병(炳) 형(炯) | ○원(遠) ○규(逵) | 종(鍾) 호(鎬) | ○순(淳) ○수(洙) | 상(相) 주(柱) | ○묵(黙) ○훈(勳) | 효(孝) 교(敎) | ○흠(欽) ○진(鎭) | 해(海) 부(溥) | ○식(植) ○모(模) | 찬(燦) 혁(爀) | ○균(均) ○배(培) | 용(鎔) 기(錤) | ○한(漢) ○연(淵) | 동(東) 정(程) | ◯환(煥) ◯섭(燮) | 규(圭) 규(奎) | ◯전(銓) ◯갑(鉀) | 철(澈) 자(滋) | ◯영(榮) ◯권(權) | 현(炫) 희(熙) | ◯기(基) ◯곤(坤) |
참조
[1]
웹사이트
『고려사』 권124, 열전37 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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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웹사이트
『고려사』 권124, 열전37 윤길보
https://terms.na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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